<기 고> 제102주년 3.1절을 맞이하며 /이강준

안상일 기자 | 입력 : 2021/03/02 [09:02]

 <기  고 >

                             제102주년 3. 1절을 맞이하며

                                                     국립이천호국원  이강준  시설팀장

                       

코로나로 인해 움츠러든 사회, 그 와중에도 멀게만 느껴지던 봄이 어김없이 돌아오고 있다.

 

이와 함께 3·1절 역시 우리에게 102년 전의 함성을 깨우쳐주며 다가오고 있다. 독립을 위해 일제의 무도함에 맞섰던 기개와 자긍심의 역사, 코로나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빛난 대한민국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 102년 전 태극기의 물결을 바라보던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어 새삼 뿌듯해지기도 한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울분은 민족의 마음 아래에 켜켜이 쌓여갔다. 일제는 총칼로 이런 분노를 억누를 수 있다고 자만했다.

 

하지만 화산 아래 가득 찬 마그마가 터져 나오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고 인간의 힘으로는 그것을 억누를 수 없듯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염원과 일제에 대한 분노도 간악한 술수와 계책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만족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전국에 독립만세의 함성을 울렸고, 그 함성 속에는 남녀도 빈부도 귀천도 없었다.

 

 조선총독부의 폭력적인 진압이 있었지만 이는 들불처럼 번지는 3·1운동의 기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계층은 더욱 다양해졌고 일제의 압력을 피해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곳에서 퍼져나갔다.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나라에서 우리의 3·1운동에 자극을 받아 자국의 독립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그야말로 한류의 원조라고 할 만 하다.

 

 이따금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이라고 폄훼하는 글이나 주장을 대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편협한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

 

3·1운동으로 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독립의 희망을 이어가던 독립투사들은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3·1운동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이후 본격적인 대일 무장 투쟁에 나설 용기를 얻게 된다. 3·1운동이야 말로 우리 민족을 독립으로 이끈 가장 거대하고 명확한 역사의 발자국이었다.

 

 코로나19가 휩쓴 위기의 상황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마치 3·1운동에 나선 조상들과 같이 두렵고 강력한 적을 맞아 단합했고 견뎌냈으며 이겨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단번에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전 세계의 달라진 눈빛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3·1운동처럼 누구에게 미루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서로 격려하며 이겨냈던 우리 국민의 노력과 공동체를 향한 희생, 대의를 위한 명확한 목적의식에서 기인한다.

 

 앞으로 어떤 위기와 어려움이 우리에게 닥쳐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그것을 극복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3·1운동을 통해 한 마음으로 화합하는 기적을 이룬 민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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