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 대표적 관광자원 네 번째, “오산 화성궐리사”

안상일 기자 | 입력 : 2017/12/15 [11:00]
    오산 화성궐리사

[오산 = 안상일 / 안정태 기자]오산시 대표적인 관광자원 네 번째 이야기는 정조의 정신이 살아있는 오산 화성궐리사(華城闕里祠誌)이다. 시티투어 코스로 높은 만족도를 보였던 궐리사는 경기도 기념물 147호이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와 중국 곡부市에서 보내준 공자상이 있다. 또한 최근에 인성학당을 개관하면서 역사와 체험, 교육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오산시 궐동에 소재한 ‘화성궐리사’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이자 공자의 64대 손인 공서린(孔瑞麟)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이후, 정조 16년 (1792년) 칙령으로 창건된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다.

정조가 왕권강화책으로 신도시 건설을 화성에 추진하면서 수원(화성) 고적을 탐사하던 중 이곳이 중종 대에 경기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한 공서린 선생이 기묘사화 후 낙향해 후학을 양성하던 서원의 터임을 확인하고, 수원부사에게 명해 사당을 건립하고 공자의 유상을 보내 봉안하도록 했으며 중국 곡부(산둥성)의 공자의 고향인 ‘궐리’를 일컫는 말인 궐리사(闕里祠)’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일반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궐리사는 정조의 명에 따라 세워진 왕립(국립)학교인 셈이다.

충청도 노성에 궐리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산 화성궐리사의 의미가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정의 허락 없이 노론 신하들에 의해 건립된 노성의 궐리사를 혁파하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건립한 궐리사를 통해 백성을 위한 합리적 개혁을 실현하고 유학의 본질적 가치를 더욱 높이겠다는 정조의 이념적 가치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만큼 궐리사는 조선 유학의 상징이며, 공자의 사당이면서 정조의 사당이기도 하다.

궐리사에는 공서린 선생과 생사의 인연을 같이 한 은행나무가 있다. 공서린 선생은 공자께서 은행나무 아래 후학을 가르치신 뜻을 새기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고 북을 매달아 학동을 불러 모으거나 면학을 독려하는 수단으로 썼다. 그러나 1541년 공서린 선생이 죽자 이 은행나무도 주인의 운명을 따라 고사하고 말았다. 학문연마의 소임을 이끌어 줄 주인을 잃고 생명의 끈을 내려놓은 것일까. 그로부터 250년쯤 뒤인 1792년 정조가 궐리사를 창건하던 해 기적같이 소생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화성궐리사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살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오랜 세월 역사의 한 축을 이루며 궐리사의 가치를 지켜왔다.

오산 화성궐리사에는 중국 곡부市에서 기증한 높이 3m40㎝, 무게가 8t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공자상과 공자님의 행적을 그림으로 설명한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가 있다. 이 성적도를 52폭 병풍(26m)으로 제작해 보관하고 있는데,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를 올려볼만한 명품이라 생각된다.

올해 개관한 궐리사 인성학당은 문화재 보존에만 머물렀던 궐리사에 미래를 위한 배움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학들의 지혜를 배우고 인성을 쌓아 미래의 인재가 될 수 있는 배움터로서의 역할을 다해낼 것이다.

최근 한류로 인해 엄청난 인원의 중국 관광객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오산시는 현재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공자의 진짜 사당을 보유하고 있다. 화성궐리사를 통해 오산의 역사 문화적 가치가 알려지고 독산성과 더불어 오산의 큰 자랑거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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