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지킴이 고교연합, 광화문 동화광장 "정권교체및 고 (故)전두환 대통령 서거 추모제" 거행

김화길 기자 | 입력 : 2021/11/27 [17:34]

 

  ©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민계식' 회장이 故전두환대통령 서거 추모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 = 미디어투데이

 

[ 미디어투데이 = 김화길/성용제/안상일 기자 ] 나라지킴이고교연합은 일파만파 전군구국동지회 등과 함께 광화문 동화광장에서 정권교체와 故 전두환대통령 서거 추모제 집회를 27일 (토) 오후 2시부터  거행하였다

 

  ©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이형규' 사무총장이 故전두환대통령 서거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미디어투데이

 

행사는 테이너김의 사회로 민계식 고교연합회장의 인사말과 개회선언에 이어 전 국회의원 송영선의원의 대장동게이트 규탄 연설에 이어 이형규 고교연합 사무총장의 故 전두환대통령 서거 추도사가 있었다

  © 故전두환 대통령 서거 추모제 행사에 참여한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회원들의 모습   사진 = 미디어투데이 

  

이어 故 전두환대통령을 추모하는 선구자 노래 제창에 참가자들의 숙연한 분위기속에서 규탄집회가 이어졌다

  © 故전두환 대통령 서거 추모제 행사에 참여한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회원들의 모습 . 열기가 뜨겁다  사진 = 미디어투데이

  

오늘 행사에는 박창우 장군 육사25기 육사구국동지회의 故전두환대통령 송별사 , 박태우 교수 , 나지훈 역사두길포럼 사무총장 , 이상환 목사, 주옥순 엄마방송대표 등의 정권교체 당위성을 설파하는 연설이 이어진 후 이정휴 일파만파회장의  '우리의 결의'를 끝으로 오후 4시경 마치고 500여명의 참가자들은  삼청동 총리공관까지 이어지는 행진이 이루어졌다

 

다음은 '이형규' 고교연합 사무총장의 추도사 전문이다 ( 편집자 =주 )

                                            추 도 사

11월 23일 아침 전두환 전 대통령님께서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두 눈가에 고였습니다.

전직 대통령님이 서거셨는데도 언론은 “사망”이라고 보도하지않나, 나라에서는 국장한다는 소리는 없고 아무런 관심도 두지않은 채 가족장으로 내깔려두는 문재인 정권에 저는 치를 떨면서 시민분향소를 설치해보려고 안깐힘을 썼지만 당국의 방해로 무산되는 바람에 오늘 광화문 토요집회에서 늦게나마 추모식을 갖게되어 감격의 눈물이 쏟아질 지경입니다.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님이 1공수특전여단장 시절 월남전에서 귀국하여 대위 중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사무관으로 상공부 수출진흥과에서 행사담당으로 대통령이 되신 전두환 대통령님을 모시고 무역진흥확대회의 등 4년간 총25회의 대통령 행사를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행사는 1986년에 세종문회관에서 수출의날행사를 마치고 저녁에 세종홀에서 무역수지흑자원년을 축하는 잔치를 벌렸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이분 만큼 자유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일반 국민을 잘살게 하도록하는 통치자의 역할을 다하고도 생전에 갖은 치욕을 당하신 대통령은 없을 것입니다.

그분을 떠나보내면서 그분의 공적과 진면목을 한번쯤 되세겨보고 맘 편히 보내드리는 것이 이시대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사는 한 국민의 도리일것으로 다짐하면서 이 추모사를 낭독하고자합니다.

첫째 국가와 민족을 구하라고 하늘이 내리신 분이셨습니다.
당신의 목표는 육군참모총장이었다고 하는데 운명적으로 구국의 대통령이 되신것은 하늘의 뜻이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7개월전에 1사단장이던 전두환 장군을 보안사령관에 발탁하지 않았드라면 대통령 시해의 의혹이 정확히 밝혀질 수 없었을 것이고 급서 이후 국가적 혼란의 수습이 수습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당시 광주사태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고 전국적으로 확대 되었을 때 분명히 북한이 남침해 왔을 것이고 자유대한민국은 공멸했을 것입니다.

또한 1사단장 재직시 수도서울 기습침투용 3땅굴을 발견했는데 3땅굴 발견과 박정희 대통령 급서이후 국가적 혼란을 수습한 것은 제2의 625를 막아 자유대한민국을 구하고 나아가 우리민족을 구하라는 하늘이 내린 구국의 영웅이라는 것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경제적 제2의 부흥을 이루고 국민생활을 안정시켰고 국민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신 분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전두환 대통령 때가 물가도 안정됐고 깡패 도둑놈도 없어 가장 살기 좋았다고 말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 중동발 오일쇼크가 닥처와 물가가 치솟고 은행 이자율이 30퍼센트를 넘어가는 등 극심한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께서 “안되면 되게하라”는 특유의 리더쉽과 과감성으로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켰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치적 7년후 1600불었던 국민소득은 3800불로 늘어나 박정희 대통령의 제1경제부흥을 이어 제2의 경제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통금해제와 두발자유화를 단행하여 국민 생활을 보다 자유스럽게 해 주었습니다.

국가보안법상 연좌제를 폐지하여 좌우갈등의 대물림을 없애주었습니다.

고성능 광역 광케이블을 깔아 집집마다 전화기를 갖고 살고 핸드폰을 갖고 사는 정보통신 혁명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한강개발을 단행하여 전국 강하천 환경개선의 단추를 열었습니다.

마이카 시대를 열어 우마차꾼 지게꾼 리어카꾼들이 자가용을 타며 사는 나라를 앞당기는등 국민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해 주신 분입니다.

셋째 86아세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여 민족사에 처음으로 전 세계인을 초청하여 우리 국가민족의 위대함을 알리신 분입니다.

전세계인들에 대한민국을 알리게된 계기는 88서울 올림픽이라고 입모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두행사를 통하여 스포츠강국으로 성장하여 국가적 위상이 올라갈 수 있었고 수많은 스포츠인들과 스포츠단체들이 나와 스포츠재능을 발휘하게함으로써 생활체육기반도 마련해주셨습니다.

넷째 영호남갈등을 줄이고 동서화합을 추구하신 분입니다.

대통령 내내 가장 핵심측근은 전남 고흥출신 장세동 장군과 전북 부안출신 고명승 장군이셨고 인재발탁에 지역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경호실장 안기부장 육군 참모총장에 호남 인재를 장기간 쓴 분은 전두환 대통령뿐이셨습니다.

88고속도로를 닦아 대구와 광주를 이었습니다.

다섯째 엄격한 반면 다정다감하고 근면 검소한 분이셨습니다.

수십년전 부하도 만나면 바로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시는 분이라고했습니다.

제가 1공수특전여단 근무를 마치고 광주에 OAC 교육을 갔을 때도 인사참모를 보내 1공수출신을 모아서 회식시켜주신 분입니다.

또한 전대통령 부부께서 옛부하들 부부를 초청 격려할때는 늘 당부하는 말은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하면서  알뜰히 살림하고 저축해서 잘살도록하라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여섯째 담대하고 정직하며 진솔한 분이셨습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정치인 평론가가 전세계 역사상 구테타로 권력을 잡아 권력을 정상적으로 이양한 정직한 인물은 전두환 장군 한분밖에 없었다는 평가가 있었고,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묻으라고 유언하시고 국장을 기대하거나 애걸복걸 하지않고 가족장으로 하는것을 보고 역시 담대하고 정직하며 진솔한 분이구나 하는것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이 험한 나라 정상배와 소인배들 원망하지 마시고 희노애락애오욕 다 떨처 버리시고 훌훌 털고 극락왕생 하소서 당신은 진실로 하늘의 선택을 받아 이 국가와 민족을 구하신 위대한 영웅이셨습니다.


                                     2021년 11월 27일
                       육사25기 나라지킴이고교연합 사무총장 이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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