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심재철 의원 - " 민주당 의원의 역사 왜곡을 고발한다 "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 '이종걸'의원등 허위사실유포 공직선거법위반 혐의

안상일 기자 | 입력 : 2020/01/12 [20:13]

 

< 전문 / 심재철의원 보도자료 > 

 

                        민주당 의원의 역사왜곡을 고발한다

  

  

[미디어투데이] 민주당의 파렴치한 역사 왜곡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이종걸 전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악용해 본 의원의 흠집내기에 나섰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들이 보수진영의 도덕성을 훼손할 목적으로 본 의원을 표적삼아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공직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2020년 1월 10일 자신의 공식 트위터를 통해 본 의원이 “‘검찰측 증인’이 된 이후 교사취업, 방송사 취직을 허락해준 전두환에 대한 보은 감정이 남다르다”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본 의원은 이종걸 의원을 허위사실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본 의원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뿐 아니라 어떤 재판에서도 피고인이었지 검찰측 증인인 적이 없다.

  

1980년 8월 시작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은 1심에서 1대법원 판결까지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피고인 24인 전원이 1982년 12월 24일까지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그 중 김대중씨는 미국으로, 이신범, 조성우, 심재권(지명수배자)은 미국, 호주, 일본으로 각각 보내졌다. 1984년 12월 1986년 아시안게임 개최를 앞두고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전원을 포함해 민주화인사 대부분을 복권시키고 복직, 복학을 허용했다.본 의원은 1986년 1월 MBC에 공채로 입사해서 1987년 12월 방송사 최초의 노조를 설립하고 언론민주화운동을 하다가 1992년 옥고를 치뤘다.

 

윤석양일병에 의해 폭로된 보안사민간인 사찰리스트 중 언론계 집중사찰 대상 6인중 한명인 본인은 신변의 위협을 각오하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는데 제대로 된 민주화운동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교사취업, 방송사 취직을 허락해준 전두환에 대한 보은’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에 의한 공직선거법위반이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재판기록물 2만쪽을 보면 민주화운동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인사들의 부끄러운 행적이 드러난다.

 

공소장을 보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 ‘한민통이란 반국가단체의 수괴인 김대중씨가 자신의 6개 사조직을 이용해 광주시위를 일으켰고 복학생그룹(민청협)을 통해 재학생들의 폭력가두시위를 통한 정권교체를 꾀했다’는 것이 사건의 요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본 의원의 이름은 피고인 중 유일하게 김대중씨의 공소장과 김대중 등 피고인 23인 공소사실 유지를 위한 101쪽 증거·증인목록(재판기록물 002227~002327쪽), 판결문([김대중 범죄사실 부분] 1-1 ~ 1-21쪽), 판결문 증거의 요지에 판시된 증인, 참고인 명단에 없다.(1심 판결문 [증거의 요지] 160쪽 내지 162쪽).

  

덧붙여 본 의원은 ①판결문에 증거의 요지, 즉 유죄입증 증인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으며(1심 판결문 증거의 요지 155쪽 내지 157쪽, 대법원 판결문 263쪽) 본 의원의 진술서는 90% 이상 본 의원의 행적만 진술했고, 본의원의 진술로 다른 사람이 새롭게 체포된 사실이 없다. ②24명 피고인중 유일하게 본 의원은 김대중씨나 다른 피고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법정 진술을 하지 않았다. ③김대중씨 공소장, 김대중씨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에도 공소사실을 시인한 피고인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6명의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시인했다고 적시됨.)④김대중씨 수사기록 목록(000893~00909. 001396~001409쪽)에 동 피고인 중 유일하게 본 의원에 대한 자료나 언급이 없다.

 

(※ 공판전 모든 증거라 할 수 있는 상기 기록에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의자 24인중 유일하게 본 의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본 의원이 김대중씨를 포함한 다른 피의자들과 공범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함)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증거목록을 보면 본 의원은 다른 나중에 잡혀 다른 피고인들 전원이 자백한 내용에 꿰어맞춰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김대중 수사기록물을 보면 본 의원은 반성문을 쓴 적도 제출한 적도 없으며, 검찰이 청구한 증인명단과, 검찰측 참고인 명단 어디에도 본의원의 이름이 없음이 확인된다.공판 속기록에는 본 의원이 공판 중 뉘우친다고 선처를 바란다는 진술조차 한 적이 없음이 확인된다. 판결문에도보면 유죄판결의 증거로 판시된 50명의 명단에 본 의원이 없음이 확인된다.

  

도저히 본 의원을 검찰측 증인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음에도 좌파진영은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지금까지도 허위사실로 본 의원을 음해하고 있다.

  

공판 속기록을 보면 본 의원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중 유일하게 김대중씨나 동 피고인들에게 시위자금 등 금품을 받았다는 법정 진술이나 자백을 한 적이 없고 법정에서 김대중씨나 그의 사조직 국민연합의 개입, 폭력시위를 부인했음이 명백히 나와있다.

  

본 의원이 첫 재판(1심 6차 공판)에 나가기도 전에 김대중씨는 검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공소장에도 없던 김상진열사 추모식때 서울대총학회장에게 20만원을 줬다는 법정진술을 했고.(1심 3차공판). 검사 역시 본 의원에게 ‘조의금으로 줬냐’고 물으며 시위자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 유죄로 판결되지 않았다.

 

이해찬씨가 80년 1월부터 김대중, 김영삼, 김홍일을 만났으며 3월 하순 부터는 이신범, 조성우피고인을 수십차례 만나 지시를 받고 ‘심재철에게 서울대의 데모를 배후 조종하였습니다’(1심 5차공판 속기록, 001417쪽) ‘가두시위를 전개하라. 수많은 사람이 투옥되어야 계엄해제를 관철할 수 있다는 지시를 받았다’(1심 5차 공판조서 001432-1433쪽) ‘서울대는 복학생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하라는 지시를 받았고’(1심 5차 공판조서 001417-1418쪽)(서울대 교내 시위를 정치적 가두시위로 전환해)불법시위를 교사한 사실이 있다.(1심 5차 공판조서 001443-1444쪽)라고 공소사실을 11차례에 걸쳐 시인했다.

  

문익환씨도 ‘국민연합의 산하단체가 민청협입니다.’(1심 3차 공판조서 001012-1013쪽)라며 김대중씨의 사조직 국민연합과 재학생 시위를 교사했다고 기소된 복학생단체인 민청협의 관계를 시인하며 국민연합 집행위원이자 민청협회장인 조성우 피고인에게 활동비를 제공했음을 시인했고(문익환 1심 3차 공판조서, 001018쪽) 이신범피고인에게 ‘지금이야말로 학생과 청년들이 적극 호응하여 계엄해제를 주장하고 이를 행동화 할 시기다’라고 했다고 시인진술했다.(1심 3차 공판조서 001024-1025쪽)

  

조성우피고인과 이석표 피고인도 ‘국민연합의 의사가 조성우를 통하여 민청협에 전달 된 것은 사실이다’(1심 6차 공판조서 001469쪽)고 시인했고 “조성우가 실질적인 민청협의 최종결정권을 가졌다‘(1심 6차 공판조서 001469, 1471쪽)고 공소사실을 시인했다.

  

김대중씨 본인 스스로도 ‘한민통을 통해 조총련자금을 지원 받았다.’‘한민통 주요인사가 친북 용공분자임을 인지했다’고 시인하는 등.(1심 2차 공판조서 00909-910, 1심 3차 공판조서 00907, 8차 공판조서 001803-1808쪽)

 

자신의 사형선고의 유죄판결의 근거가 된 공판 시인진술을 했다.

  

당시 언론에도 보도된 피고인들의 시인진술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건의 검찰측 증인이었거나, 민주화운동에 참가하지 않고 대학 편입시험, 변호사시험 등 일신의 안위만 급급했던 인사들이나 민주화운동 축에도 못끼던 인사들이 나서서 귀동냥으로 건너들은 허위사실로 사건을 왜곡하고 본 의원을 공격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국민적 알권리 충족을 위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는 판단으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공식 기록물에 편철된 기록 ‘판결문의 증거의 요지, 검찰측 증인, 검찰측 참고인, 김대중재판기록물 중 참고인 기록’등 자료를 공개한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재판기록물의 99%는 당시 수기로 기록되었으며 이 기록물을 현재 별도의 일련번호를 통해 국가기관에서 관리중이다.

  

1) 검찰이 증인청구한 법무사작성의 증인신문조서 명단(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신계륜 증인신문기록, 000547쪽)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재판에서 법무사 작성의 증인심문조서를 받은 사람은 총 17명이다. 이들은 공판 전 군사재판 법무사 입회하에 검찰측 증인으로 각 피고인의 공소사실 입증 취지 증언을 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중 김상현, 김녹영 전의원이 검찰이 증인 청구해 법무사 작성의 증인신문조서를 작성했다.

 

정수증인

 

증인신문청구 (피고인 송기원)1403조석제

 (피고인 송기원 등)1415박경일

 (피고인 설훈 등)1426이경재

 (피고인 송기원등)1441조영배

 (피고인 김상현 등)1452정동년

 (피고인 김대중 등)1466홍남순

 (피고인 설훈 등)1476박일남

 (피고인 문익환 등)1488신계륜, 이현배

 (피고인 설훈 등)1516최규엽

 (피고인 김대중 등)1529김녹영

 (피고인 김대중 등)1540김상현

 (피고인 김대중 등)1553한화갑

(피고인 김대중 등)1565이희호

 (피고인 이해찬 등)1577김병곤, 이동섭, 채광석

  

당시 검찰관은 김대중의 한민통 수괴라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측 증인으로 동 피고인 김녹영(통일민주당 당수, 국회의원), 동 피고인 김상현(한국정치문화연구소 소장, 전 국회의원)과 김대중씨의 부인 이희호씨와 공보비서 한화갑을 신청해 법무사 작성의 증인심문조서를 작성했고 이것은 1심, 2심, 대법원 판결문에 모두 유죄의 증거로 판시되었다.

  

김대중씨 부인 이희호씨도 검찰이 증인으로 청구하고 이희호 씨는 남편과 한민통과 80년 3월까지 매월 2-3회씩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었으며 한민통이 김대중씨의 구명활동도 했음을 증언해 김대중씨의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를 입증함으로써 사형선고를 받는데 증거로 인용되었다.(법무사 작성의 증인심문조서(이희호) 00769쪽) 김녹영피고인은 김대중씨가 한민통의장직을 계속하였다는 것을 증언하고 김상현피고인은 김대중씨에게 한민통 구성원들이 조총련과 북한의 조종을 받고 있음을 알리고 멀리하라고 했는데 1980년 초까지 한민통의장직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언했다.

 

(법무사 작성의 증인심문조서(김녹영) 00725-727쪽)(법무사 작성의 증인심문조서(김상현) 000739-741쪽)

  

그 외 정동년, 홍남순씨가 광주 5.18시위를 사주받았음을 증언했고, 김대중씨 사조직의 내란모의를 김상현, 사무국장 이현배, 김녹영씨가 증언했고, 신계륜 등이 ‘국민연합 산하 민청협의 재학생들의 대규모 폭력 가두시위 교사했다’고 증언해 유죄 판결의 증거로 판시된다.(신계륜 증인신문기록, 000689-000691쪽)

  

법무사의 이희호, 김상현, 김녹영, 한화갑, 홍남순, 정동년, 이현배, 최규엽, 김병곤, 채광석, 조석제, 조영배, 박경일, 이경재, 신계륜, 박일남, 이동섭들에 대한 각 증인심문조서는 위 군법회의법제 257조의 2 소정요건과 절차를 갖추어 작성된 것으로 인정되므로 피고인들이 이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는지의 여부에 불구하고 군법회의법제 355조에 의하여 증거능력이 있다할 것이니, 원심 판결에 헌법제11조 제6항 및 군법회의법제 352조, 제 361조를 위배한 잘못이나, 헌법제 110조, 군법회의법제 257조의 2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이를 위배한 잘못이 없으며,

 

(대법원 판결문 263쪽, 기록번호 000256-000257쪽)

  

2)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 유죄판결의 증거의 요지로 판시된 학생운동권 출신 검찰 측 참고인 명단.(사건기록목록 000276-277쪽,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 명단)

  

당시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진술서를 작성함으로써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검찰측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진술로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어 재판기록물 검찰측 참고인 명부에 오른 사람은 총 37명으로 본 의원은 여기에도 없다.

  

이희호(정수 1134), 김홍일(1140), 박성철(1147), 홍남순(1156), 한화갑(1160), 김옥두(1182), 함윤식(1195), 이현배(1201), 정동년(1236), 김중석(1244), 김병곤(1253), 강종호(1258), 조석제(1271), 박경일(1285), 조영배(1292), 신계륜(1301), 박일남(1313), 이경재(1323), 금승기(1335), 최규엽(1341), 유시민(1354), 박성혁(1365), 이청조(1370), 이동섭(1374), 조인영(1379), 이상준(1383), 이철우(1388), 백상순(1394), 채광석(1399)

  

3) 학생 시위에 대한 공소사실의 증인, 증거가 되어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된 검찰측 증인과 참고인 명단:

 

강종호, 김병곤, 채광석, 조석제, 박경일, 최규엽, 금승기, 이청조, 신계륜, 유시민, 박성혁, 이현배, 이상준,이경재, 박일남, 이동섭, 박경일, 조영배

 

이들의 진술로 학생시위에 관한 검찰의 공소사실이 100% 유죄로 판결되었다.(1심 판결문 000155-157쪽)

  

4) 이해찬의 혐의를 입증한 검찰 재정 증인: 박용훈, 강종호(증거신청서 정수 1664쪽, 선서서 1659쪽)

  

5) 김대중 수사 기록목록(기록목록 1 000893~000909, 기록목록 2 001396~001409쪽)

  

김대중씨 수사 기록목록(수사보고, 검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사법경찰관 작성의 참고인진술조서, 압수 및 증거목록, 반성문 등의 총 33쪽 기록물, 기록목록 1 000893~000909, 증 제73호증 기록목록 001396~001409)에 동 피고인 24인 중 본 의원에 대한 언급만 빠져있다.

  

김대중씨 수사기록에는 본 의원을 제외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전원이 김대중 유죄취지를 입증하는 증거, 증인, 참고인이었음이 보여진다. 이 수사기록물에는 김대중씨를 포함한 17인의 피고인이 쓴 반성문을 증거로 기재했다.

  

김대중 반성문(1980.7.23.), 김종완 반성문(1980.7.6.), 서남동 반성문(1980.7.8.), 한승헌 반성문(1980.6.18.), 김상현 반성문(1980.7.4.), 이신범 반성문(1980.7.7.), 김녹영 반성문(1980.6.26.), 이문영 반성문(1980.7.5.), 이해동 반성문(1980.7.5.), 김윤식 반성문(1980.6.24.), 한완상 반성문, 유인호 반성문(1980.7.), 송건호 반성문(1980.7.8.), 이호철 반성문(1980.7.10.), 예춘호 반성문(1980.7.7.), 고은태 반성문(1980.7.), 문익환 반성문(1980.6.29.)

   

6) 판결문

  

판결문에 인용된 증거의 요지에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들이 사형 혹은 중형을 선고받게 한 유죄 입증 증인 명단이 있다.(총 50명) 이중에는 유시민, 신계륜씨를 비롯해 학생 운동권인사 17명과 동 피고인 중 김녹영, 김상현씨, 김대중씨 가족 3명, 비서진 4명이 포함되어 있다.

 

증거의 요지

 

위 판시 사실중 피고인 김대중, 문익환, 이문영, 조성우, 설훈, 서남동 및 김윤식에 대한 판시 전과의 점을 제외한 나머지 사실은,

  

피고인들의 이 법정에서의 판시 사실에 전부 또는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

 

증인 박용훈, 동 강종호, 동 김중석, 동 이대영의 이 법정에서의 증언중 판시 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

 

법무사 작성의 이희호, 김상현, 김녹영, 한화갑, 홍남순, 정동년, 이현배, 최규엽, 김병곤, 채광석, 조석제, 조영배, 박경일, 이경재, 신계륜,박일남, 이동섭에 대한 각 증인 신문조서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부분.

 

경찰관 작성의 피고인들에 대한 각 피의자 신문조서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부분.

 

검찰관 작성의 한화갑, 김중석, 홍남순, 함윤식(피고인 김상현에 대하여는 제외), 김옥두(피고인 김대중에 대하여는 제외), 강종호, 김병곤, 채광석, 조석제, 조영배, 박경일, 최규엽(피고인 조성우에 대하여는 제외), 금승기, 이청조, 유시민,박성혁, 이현배(피고인 김대중,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고은태, 한승헌 및 이해동에 대하여는 제외). 조인영, 이상준에 대한 각 진술조서 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 기재부분.(중략)

 

군사법경찰관 작성의 장두영, 서인환 박재현, 최병걸, 김완준, 한화갑(피고인 이문영에 대하여는 제외), 김옥두, 김송자, 최상필, 김재준, 조봉선에 대한 각 진술조서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 기재부분.

 

전용술, 김덕수, 최병찬, 강대진, 김대수, 서경석, 김언호, 이기중, 김난규, 유진훈, 임관순, 유찬주, 작성의 각 자술서 또는 진술서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 기재부분. (중략)

  

등을 종합하면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 김대중, 문익환, 이문영, 조성우, 설훈, 서남동 및 김윤식에 대한 판시 각 전과외 점은 위 피고인들의 이 법정에서의 각 해당판시 전과에 부합하는 진술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이건 판시 사실은 증명이 충분하다.

 

(1심 판결문 1심 판결문 정수 160~162쪽, 000155-157쪽)

  

7) 누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하는가?

  

얼마전 80년을 모르는 81학번으로 84년 서울대민간인 프락치 사건 때 공범이던 유시민을 두둔하기 위해 나선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자료가 없으며 이를 알고 있는 심재철 의원이 허위주장을 하고 있다며” “심재철 의원의 주장을 반박할 문서상의 자료를 신군부 측이 모두 없애버려서 분하게 여긴다”고 했는데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윤 사무총장은‘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에 김 대통령 본인이 보고자했으나 재판기록물 일체가 파기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며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조차 볼 수 없었다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재판기록물은 현재 국가기록원과 법원에서 보관 중이며 2012년 민주당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만일 김대중씨가 실제로 그 재판기록물을 보지 못했다면 이는 김대중씨 최측근들이 검찰측 증인과 참고인으로서 김대중 씨 공소사실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언을 해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던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하려는 시도로 보여질 수도 있다.

  

이희호, 한화갑, 김옥두, 김상현씨는 한민통과 김대중씨 관계를 입증했고, 김홍일은 아버지 지시로 학생운동권으로 사조직(연청)을 조직했다고 진술했으며 김대현씨는 형 김대중씨의 정치자금 수수를 증언했다.

  

동교동계 막내인 신계륜씨는 ‘(설훈이) 5.8. 복학생 대표자 회의에서 시내 각 대학생들이 힘을 모아서 조직적인 폭력 가두시위를 전개하여 정부를 밀어붙이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대정부 가두시위를 벌여 각 대학이 광화문에 집결하여 각 대학별로 정한 정부의 중요 관공서를 점거하면 된다.(중략) 각 대학이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하여 돌, 화염병 등으로 조직적으로 대항하면 경찰은 사기가 떨어져 발포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군이 개입하여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이때 흥분한 일반 시민들과 합세하여 관공서를 점거하게 되면 치안이 마비되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정부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라며 4.19와 같은 폭력 가두시위로 정권교체를 도모했다는 것을 입증했다.(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신계륜 증인신문기록, 000664-000694)

 

  

                                    2020. 1. 12.

 

                                국회의원 심 재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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